피아니스트 변정은

‘피아니스트’라 불릴 때 가장 행복한 사람

“산쟁이는 ‘정복’이라는 말을 안 씁니다. 운 좋게 산이 허락해서 잠시 머무는 것이죠.”
영화 ‘히말라야’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났다.
그 영화에서 누군가 ‘이번에는 히말라야를 정복하고 말겠다’며 결기 어린 말을 던지자, 황정민(엄홍길 분)은 타이르듯 그윽하게 말한다. 산이란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고… 자연이 허락할 때만 잠시 산에 올라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변 교수도 히말라야의 혈기 넘치는 산 사나이처럼 오랜 시간 피아노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온 것 같다.
“돌이켜보면 피아노를 만난 이후 피아노는 늘 도전의 대상, 극복의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결코 내 편이 되어준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거든요. 학생 때부터 피아노를 이기고 싶어 치열하게 연습하면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십 줄이 넘어서야 나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세상’이란 걸 깨달았어요.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늘 동행해야 할 내 자신, 그런 걸 깨우쳤다고 할까요?”
이보다 더한 깨달음이 어디 있을까? 한유는 맹동야에서 ‘세상의 모든 물체는 평안함을 얻지 못할 때 운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울거나 분노하고 힘들어할 때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변 교수는 피아노를 극복하기 위해 매진했을 때 결코 마음이 편치 못했거니와 종종 분노, 부정, 타협, 절망과 같은 역정(歷程)을 걸었다. 그러나 비로소 순수한 피아노 앞에서 자아를 수용하는 ‘평화’를 얻었던 것이다.
이제는 동행자가 된 피아노 앞에서 늘 행복한 변 교수. 이런 이유로 ‘피아니스트’라는 명칭을 가장 사랑한다. 단국대 음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우인아트홀 예술감독으로서 공연 콘텐츠 기획을 즐겨하지만 그보다 ‘피아니스트’라 불릴 때 더 없이 행복하다.

피아노 인생의 가장 큰 변화, ‘변화경’ 교수를 만나다

서울예고와 서울대를 나와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석사와 연주자과정을 마치고 뉴욕 스토니브룩음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변정은 교수는 그가 출연했던 음악회의 제목 ‘인생, 건반위를 걷듯’에서 느껴지듯 오직 피아노의 길만을 일로매진(一路邁進)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변 교수의 첫 화두! 피아노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할 때 기자는 ‘변 교수는 단순한 피아니스트가 아니다’고 느꼈다. 그 말속에 숨겨진 문학적 ‘끼’를 낚아챘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날 법한 그가 어떻게 피아니스트가 되었을까?
“부모님께서 음악을 참 좋아하셨어요. 특히 아버지(변응헌 (주)우인웨이브 대표)는 지금도 성악레슨을 받으시고 연주도 하시죠. 그런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자란 게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피아노를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노래를 부른 후 그 노래를 피아노로 꼭 쳐보곤 했는데 음의 높이나 멜로디가 똑같은 게 신기했어요. 생일이 늦어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탓에 피아노를 친구처럼 생각했거든요. 연주하면 항상 칭찬을 받았고요. 내가 제일 잘하는 건 피아노라는 생각이 그렇게 굳어졌답니다.”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책을 가까이 했고 독서 후에 깊은 사색에 빠지곤 하던 변정은 교수는 학창시절에 철학과나 국문과를 전공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연주자의 꿈을 놓지 않은 변 교수의 삶은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음대로 가게 된다. 고등학교 때까지 사사받은 김민숙 교수의 영향으로 독일유학을 꿈꾸던 변정은은 서울대 1학년 시절 변화경 교수를 만나면서 커다란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다.
“제가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는 우리나라 음악인들이 국제콩쿠르에서 큰 성과를 올리기 시작하던 시기였어요. 백혜선 선생님이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와 쇼팽콩쿠르에서 입상했죠. 어느 날, 백혜선 선생님의 스승인 변화경 교수님이 마스터클래스를 하러 오셨어요. 그 만남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분의 레슨은 대단했다. 그동안 궁금하던 게 줄줄이 풀렸다. 목에 걸린 가시를 뽑아내고 ‘파인만의 원리처럼’ 알고 있는 듯하지만 막상 풀어내려면 해답을 찾지 못하는 답답함이 ‘좌악’ 해갈되는 느낌이었다. 변정은은 마스터클래스로는 부족하다 싶어 당장 레슨을 신청하고 싶었다. 선배들이 레슨 받는 모습을 보며 열정이 타올랐다.
“마스터클래스가 끝나자마자 문을 박차고 선생님께 뛰어가서 외쳤어요. ‘선생님! 혹시 미국에 가면 선생님께 레슨을 받을 수 있나요?’ 선생님께서도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 없이 ‘그래, 오거라!’하고 답하셨거든요. 무모했지만 그 정도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변 교수의 바람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래 오라’는 대답에서 희망을 발견한 그는 그해 겨울방학, 보스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침 사촌오빠가 보스턴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가능했고 몇몇 서울대 선배님들이 그 문하에 있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후일담이지만, 선생님께서 저한테 미국에 오라고 하셨던 그 이야기를 까마득히 잊고 계셨더라고요.(웃음)”

유학 시절,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장 크게 성장

보스톤에서 받았던 2주 동안의 레슨은 변 교수에게 피아노라는 신기루의 막이 서서히 걷어치워진 신세계였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즐거웠다. 뉴잉글랜드의 연습실을 둘러보면 모두가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었다. 변 교수는 너무 뛰어난 사람들이 많으면 좌절할 법도 한데 그는 거꾸로 그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다. 하루 빨리 유학해 온종일 피아노만 치고 싶었다. 1학년 겨울방학부터 4학년 졸업할 때까지 방학 때마다 보스톤을 찾았지만 열망은 더욱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결코 식지 않았다.
“학기 중에는 미국을 가기 위해 반주 아르바이트로 늘 바빴습니다. 그러다 방학을 맞으면 변화경 교수님께 레슨을 받고 다음 학기 실기곡과 콩쿠르곡을 온종일 연습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대학 생활을 보내다 보니 졸업 때는 서울대 정기오디션에 협연자로 뽑혀서 대학생으로서는 최초로 서울음대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영광도 안았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의 노력은 국내 유수 콩쿠르에서의 입상으로 이어졌다. 그 실력을 기반으로 마침내 4년 동안 꿈꾸었던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러셀 셔먼 교수님과 변화경 교수님의 클래스는 한국 최고의 피아니스트 군단이었습니다. 대단했죠. 백혜선을 비롯하여 주희성, 강현주, 김나영, 서정원, 박정희, 한기정, 박종화, 손민수, 최유진, 윤홍천 등 지금 국내외에서 일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분들이 모두 이 두 분의 제자들이거든요.”
그런데 어쩌랴. 막상 유학을 떠나자 레슨 때마다 피아노는 거대한 벽으로 우뚝 섰다. 그토록 열심히 연주하고 콩쿠르에서도 우승했지만 마음이 원하는 대로 손이 따르는 ‘심수상응’(心手相應)의 경지에는 너무나 멀어보였다. 극복하기 어려운 담벼락 아래에서 변 교수는 ‘피아노를 언제 그만둘까’ 고민의 싹이 트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스스로를 무섭고 독하게 몰아부쳤다. 하루에 10~12시간씩 연습하면서 버텼다.
“정말 힘들게 공부했는데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가장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던 시간이었어요.”
피아노의 거대한 담벼락은 오히려 변 교수를 크게 성장시킨 셈이다. 어쨌든 그에게 허락된 석사학위와 연주자과정 3년은 음악적 성장과 함께, 크고 넓은 세계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과 교류하고 생활하며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를 자연스레 흡수했다.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시절을 거쳐 뉴욕 스토니브룩음대에서의 박사과정은 이때 배운 것들을 정리하며 자신의 것으로 승화하는 시간이었다.
“변화경 선생님은 저희 클래스를 모두 데리고 하버드 대학 극장에서 종종 연극도 보여주셨어요. 문학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전부는 알아듣지 못해도 헨릭 입센 같은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음악을 외곬으로 보지 않고 문화와 타 장르의 다양한 예술을 접한 게 가장 영양가 있는 산 교육이 아니었나 싶어요.”
변화경 교수는 ‘인생에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지금뿐이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가 열릴 테니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연습하라’고 했다.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된 말씀이었다. 사상가 쇼펜하우어도 ‘문장론’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사색하여 얻어진 사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사상가’라 했다.
“이제 그 뜻을 알 것 같아요. 저도 학생들에게 이 귀한 학생 시절에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강조하고 저 역시 학생들을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레슨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너나들이처럼 격의없이 대하더라도, 레슨을 일단 시작하면 최대한 많은 피아니즘과 지식을 배우게 하죠. 엄격하게 가르칩니다. 학생 시절은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니까요.”

수많은 제자들이 다시 찾는 사랑 넘치는 스승, 변정은

변 교수는 2015년 단국대 교수로 부임해 주로 석사와 박사과정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논문을 지도하고 리사이틀 연주레슨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올해부터 상큼한 학부생들까지 가르치게 되었다. 20살 새내기부터, 박사를 공부하는 학생까지 연령층이 굉장히 넓어졌다. 석박사 학생 중에는 학사 졸업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석사과정을 곧바로 시작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변 교수 찾아 삼만리’처럼 변 교수의 레슨을 받고 싶어 입학한 학생들이 많다. 변 교수가 제자를 어떻게 사랑하고 가르치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부터 예원, 서울예고, 선화예중고, 계원예중고, 서울대, 단국대, 건국대, 이화여대 등에서 그동안 가르친 제자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강사시절 학부생 제자였던 학생, 미국, 독일 등지에서 유학하고 온 학생, 또 중국에서 유학 온 중국인 학생과 조선족 학생까지 저를 찾는 학생들이 매우 다양해요. 모두 배움의 의지가 강한 학생들이에요.”
변정은 교수의 클래스는 ‘들음’과 ‘나눔’의 레슨을 강조한다. 학생들이 서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오픈한다.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성해주는 셈인데, 미국의 경우 박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부 학생을 지도해준다. 이는 박사과정 학생들에게는 아르바이트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박사과정 학생들에게는 틈나는 대로 후배 학생들을 도와주도록 권유하고 있어요. 가르치는 게 가장 큰 공부이기도 하고 후배 입장에서는 선배에게 배우는 즐거움도 크고요.”
변정은 교수는 사실 오래전부터 레슨에 관한 한 최고라는 평판이 자자하다. 어느 대학이나 학생들의 실력과 경험은 천차만별이다. 이때 학생들 각자의 수준에 맞게 레슨해 주는 게 최고의 레스너가 아닐까? 변 교수의 가르침은 이 점에서 빛난다. 아마도 오랫동안 가르쳐온 그의 강사경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귀국 이후 2002년부터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부터 예원, 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까지 전 연령대의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학생들을 많이 가르쳐 보는 게 선생에겐 가장 큰 재산인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변 교수 역시 자신이 열정을 다해 가르친 제자가 공인된 콩쿠르에서 입상할 때가 가장 기쁘다. 그에게는 뛰어난 많은 제자들이 있다. 그중에서는 가장 최근인 2017년,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의 방돔프라이즈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를 차지한 김도현이 있다. 김도현은 뉴욕 YCA 오디션에서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도현이는 다니엘 트리포노프와 같은 클래스에서 세르게이 바바얀을 사사하고 있어요. 스승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안겨준 제자 중 한명입니다.”

다양한 학생을 가르치던 강사때와 전임과 교수가 된 후의 달라진 점을 묻자, 전임이 된 이후 피아니스트로서 몰입할 수 있는 시간과 고민이 한층 깊어졌다고 말한다.
“강사때와는 달리 정신무장을 늘 새롭게 하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대학은 조직사회이고, 시스템을 잘 이해해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룰을 파악하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은 좋은 교수님들과 즐겁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한분 한분 훌륭하신 교수님들께 많이 배우고 있고요. 모든 교수님들이 굉장히 열정적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쉴 수가 없어요. 매일매일이 도전입니다.”

아! 베토벤의 마음이 이랬구나

“한평생 음악을 했지만, 이제는 나의 삶 구석구석에 음악이 스며들어 있어 전공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하고요.”
그는 어떤 연주를 하든 완벽하게 준비하고 자기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한 아티스트다. 웬만한 일에는 눈을 감고 긍정적으로 대하며 일상생활에서 실수도 많지만 연주 준비만큼은 평소 성격과 다르다. 레퍼토리가 결정되면 최소 6주 전에 암보를 마쳐야 직성이 풀린다.
“제 자신의 부족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죠. 이렇게 연습하다 수명이 줄겠다 싶을 만큼 힘들게 준비합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학생들이 많을 때는 레슨하느라 제가 원하는 만큼 연습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물론 학생을 가르치는 기쁨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어진 시간에 몰입하는 능력도 좀 생기더라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연주회를 묻자 지난 2월 26일 베토벤 소나타 연주를 언급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번, 15번, 17번을 올렸는데 특히 ‘템페스트’를 연주할 때 온전한 ‘감정이입’을 체험했다. 템페스트는 베토벤이 유서를 작성했던 시기의 작품이다. 변 교수는 그 곡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란 다 같다고 느꼈을 만큼 베토벤의 아픔이 심장으로 전이됐다.
“가끔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저도 비슷한 경험을 처음 했어요. 연주자는 작곡가와 청중의 매개체입니다. 제가 느끼는걸 청중들도 똑같이 느껴주길 바라는 큰 욕심을 품고 무대에 오르죠. 연주 후 어떤 선배님이 베토벤 음악이 정말 아름답더라 라고 심플한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참 좋았어요.”
다시 화두로 돌아가보자. 피아노는 인생의 동행자이자 그녀 자신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피신처는 피아노였다. 보통 사람들이 음악이 좋다고 가볍게 말할 때도 그는 달랐다. 좋기만한 음악이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견디기 힘든 일, 인간관계의 갈등, 고난의 순간들을 피아노의 힘으로 일어섰기 때문이다.
“사실 늘 피아노를 치면서도 음악을 이만큼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요즘 세상사는 방법도 힘들고,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참 어렵잖아요. 삶이 어려울 때 자연스레 연습에 몰입하게 되었고, 연주를 통해 슬럼프에서 여러 번 빠져나올 수 있었거든요. 연주자로서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할 뿐입니다.”

피아노는 평생 함께 걸어갈 동반자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의 작은 손에 시선이 멈췄다. 러시안 레퍼토리와 낭만 음악을 평소에 선호하지만 대개 이런 작품들은 큰 손을 요구한다. 변 교수는 그런 작품을 대할 때마다 손이 단단히 고생한다. 학생 때는 반창고 여왕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다. 작은 손으로 대곡을 연주하느라 열 손가락에 반창고가 떨어질 날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 역시 변 교수의 성장에 오히려 득이 되었다. 손이 작기 때문에 자기만의 연습방법과 테크닉을 찾아야 했고 그 덕분에 제자들을 가르칠 때 손 큰 사람이 가르칠 수 없는 오랜 비법이 툭툭 튀어 나온다. 손 작은 제자들은 그래서 행복하다.
젊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로서 피아노음악을 비롯,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변 교수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우선 젊은 친구들이 방탄소년단에 왜 이렇게 열광하는지 사실 가슴으로는 공감이 안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클래식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질 수 있다고 인정한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베토벤 소나타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욕심이란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도 클래식은 꼭 필요하죠. 클래식은 시각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장치잖아요. 그래서 클래식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대중음악은 짧은 시간에 감정을 폭발적으로 밖으로 표출해 버리지만 클래식은 정 반대죠. 진정으로 내면의 소리를 들을 기회가 적고 자신과 대화하는 게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표피적인 유행의 소리보다 어떻게 해야 참된 ‘행복’과 ‘아픔’을 느낄 수 있는지 내면을 향해 끊임없이 물어보도록 하는 것이 클래식의 가치다.
“우인아트홀의 음악감독으로서도 책임감을 느끼죠. 다음 세대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자주 오를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게 우인아트홀의 목표거든요. 젊은 연주자들이 우인아트홀에 서면서 클래식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우선 저부터 우인아트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진행해온 ‘살롱콘서트 시리즈’에 다양한 장르의 실내악, 또는 솔로 작품도 지속적으로 올리고 싶어요. 나아가 인문학콘서트를 개최해 지역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콘서트도 기획 중입니다.”
교육자이자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는 피아니스트 변정은 교수. 피아노와 하나가 되고, 작곡가와도 하나가 될 만큼 천생 음악인인 변 교수는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몰라도 늘 음악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다. 혹시나 은퇴 이후의 삶이 그려지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빙그레 웃는다.
“저의 마지막 꿈은 선교사예요. 은퇴하면 아마 이곳 저곳에서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피아노도 가르치고 찬송가도 가르치며 지내고 있을 것 같아요.”
평생 피아노와 함께 걸어온 그의 재능이 세상 속에서 더욱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기대한다.

글 김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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